미래는 이미 존재하는가?
우리가 믿어온 가장 거대한 착각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말한다. 시간이 빠르다, 시간이 느리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시간을 느낀 사람은 있어도, 시간을 본 사람은 없다.
이 글은 우리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질문에서 시작한다.
시간은 정말 ‘흐르고’ 있는가?
아침이 오고 밤이 온다. 아이는 자라고, 우리는 늙는다.
우리는 이 모든 변화를 하나의 단어로 묶어왔다. 바로 시간의 흐름.
하지만 여기서 첫 번째 균열이 생긴다.
영화 필름을 떠올려보자. 필름의 각 장면은 정지된 이미지다.
그러나 연속적으로 재생되는 순간, 우리는 ‘움직임’을 본다.
놀랍게도 현대 물리학의 방정식 어디에도 ‘시간은 흐른다’는 문장은 없다.
과거와 미래를 바꿔 넣어도 대부분의 물리 법칙은 그대로 성립한다.
만약 시간이 실제로 흐른다면, 왜 우주의 법칙은 그 사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을까?
물리학이 인정하는 것은 단 하나다.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의 증가.
컵은 깨지지만, 깨진 컵이 저절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비가역성을 ‘시간의 화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늘 ‘지금’을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물리학적으로 현재는 극도로 불안정한 개념이다.
빛은 유한한 속도로 이동한다. 지금 보고 있는 별빛은 수천 년 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주 전체가 공유하는 ‘현재’라는 순간은 정말 존재할까?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속도가 다르면, 중력이 다르면, 같은 사건도 어떤 이에게는 과거이고 다른 이에게는 미래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있다.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우주.
우주는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 안을 이동할 뿐이다.
이 순간, 가장 위험한 질문이 등장한다.
미래가 이미 존재한다면, 내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은 수백 년 동안 철학자들을 괴롭혀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다.
이야기의 결말을 안다고 해서 이야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느끼는 자유의지는 결과를 바꾸는 힘이 아니라,
이야기를 살아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과학이 말하는 결론
그럼에도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과거를 저장하지만 미래는 저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느낀다.
시간은 강이 아니다.
기억을 가진 존재가 만들어낸 방향성이다.
이 글을 다 읽은 지금도 시계는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 장을 향해 계속 읽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